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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칼럼]젊은이들이여 생각해 보자 2-3 – 젊은이들에게 주는 효도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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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9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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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농군학교의 설립자 이신 김용기 선생님의 1979년 저서"이렇게 살 때가 아닌가"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약 40년이 지난 글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참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효가 뭔가에 대한 그 의미와 그 중요성을 대강 말한 셈이지만, 그것은 상식에 불과한 말들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그만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히 요즘 그 효도가 소홀히 되어 가고 있으니 그 원인이 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을 나는 서구에서 발달한 실용주의(實用主義)사상이 직수입되어 그것이 우리 사회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만연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용주의란 문자 그대로 실용에 소용되는 것만이 진리라는 주장이요, 사상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효도가 당장에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니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용주의란 소위 민주적 개인주의 윤리를 기초로 하는 입장이므로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다> 식이다.   늙고 힘없는 부모를 섬기는 것보다는 힘이 센 실력자에 붙는 것이 훨씬 이득이 있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 사상은 오늘날의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나서 사람이 되는 교육보다는 돈 잘 버는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다. 학부모나 학생이나 소위 일류병환자들이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에게 목전에 보이는 이득을 줄 때에 한해서만 부모이고 이득을 주지 못할 때는 타인(他人)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언젠가 서울 도봉산(道峯山)에서 오남매를 둔 70대 노부부가 자살한 사건이다. 오남매를 낳아 모두 성가시키자 이 노부부는 아들들한테 여생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아들 며느리도 그 노부부를 자기네가 모시겠다고 하는 아들 며느리는 없었다. 형은 아우네 집으로 가라하고, 아우들은 형네 집으로 부모를 쫓곤 하였다. 이렇게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고 하던 끝에 마침내 노부부는 손잡고 산에 올라가 음독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그때 신문에 난 바에 의하면, 바깥노인은 72세였고, 안노인은 68세였다. 

그 노부부가 돈이라도 가진 것이 있었다면 아들들이 서로 모시려 했겠지만, 결국 노부부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고만 것이다. 그 가치에 있어 돈보다 못한 것이 부모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준 실례라 하겠다. 부모를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지는 것 그것이 과연 실용주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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