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커뮤니티 가나안 칼럼

가나안 칼럼

게시글 검색
[가나안칼럼] 우리는 이때 이렇게 살자 2-2
가나안농군학교 조회수:395 118.131.135.99
2016-03-17 11:16:21
가나안농군학교의 설립자 이신 김용기 선생님의 1979년 저서"이렇게 살 때가 아닌가"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약 40년이 지난 글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참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신조

2.지방적인 파벌의식을 버리고 살자

이것 역시 씨족관념만큼이나 우리 국민의 단합을 저해하는 암적 의식이다. 서울사람은 지방사람을 멸시하고, 지방사람은 서울사람을 경원하고, 지방사람 상호간의 서로우열을 다툰다. 이 역시 이조 봉건제도의 산물로 후진국일수록 이 의식이 심하다. 봉건사회에 있어서는 군주와 신하와의 종적인 유대만이 강하게 맺어져 있었던 반면에 국민 상호간의 횡적 유대는 아주 약하였던 데 기인한다. 그래서 국민은 임금이 있는 서울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사랑을 받는 것이 되고, 멀리 떨어질수록 그 사랑이 덜하다고 생각되어, 하다못해 귀양살이까지도 왕도와 가장 먼 변두리로 보냈다.

그래서 지방 상호간은 어느 쪽이 임금이 있는 왕도와 더욱 가까운가로 그 사랑과 충성의 우열을 다투었다. 왕도인 서울에 가까운 도일수록 도내에 군을 많이 둔 것은 충성된 신하에게 벼슬을 주어 왕도 주변에 많이 두기 위해서였다. 경기도가 도 중에 가장 작으면서 군청 수는 가장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되어 변두리에서는 중앙의 푸대접에 대한 불만으로 자연 반란이 잦았다. 그러면 또 그 비장을 반역향이라 하여 그 지방 출신에 대하여는 벼슬길을 막아 놓는다. 그리고는 중앙에서는 보복과 탄압을 심히 하였다.
선조때, 전주 남문 밖에 살던 정여립의 반역음모가 누설되어 마침내 그는 자결해 죽고, 그의 도당과 그와 관계를 맺었던 동인들까지 연좌처형을 당했다. 여립 사후, 호남인의 등용을 제한하여 당시 황해.평안.함경의 서북인들과 같은 차별을 받게 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런 무모한 봉건적인 잔재를 오늘날까지도 청산 못하고 국민 상호간은 물론이지만, 심지어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자기 출신도 사람이 아니면 등용을 시키지 않고, 또 어느 도 사람은 근성이 어쩌니 하여 등용을 주저하는 따위의 사례가 허다하다.
하루 빨리 이런 그릇된 사고방식을 지양하여야 한다.




시대가 지나갈수록 지역적 차별의식은 점점 없어질거라 믿지만, 완전히 사라질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데, 요즘은 지역적 의식보다 계급적 의식이 더 커지고 있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수저, 흙수저 등. 금수저가 되기 위해 불법도박을 선택하는 흙수저가 많아져서 불법도박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생긴다는 기사를 본다면 안타까움과 걱정이 누구나 생길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내가 먼저라는 자세로 조그만한 것부터 변화한다면,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나라가 올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개척합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